새 아침이 오면 희뿌연 안개 같은 기억을 더듬으려 늘 애썼다. 하지만 그 곳에 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나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파노라마같이 스쳐가는 수십 개의 영상들과 때로는 여기 저기 찢기고 멍든 상처를 보며 때때로 메마른 한숨을 쉬는 것이 전부였다. 잊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그 시절. 나의 모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그 때. 핑계라면 아직 어리던 그 시절에 나는 알면서도 해서는 안 되는 참으로 무서운 짓에 중독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선 내 손엔 나도 모르게 다시 부탄가스통이나 본드를 넣은 검은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아도 난 참 불행한 아이였다. 알코올중독이셨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버지를 피해 언니와 밤늦도록 동네 놀이터며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러다 지하 단칸방 창문 너머로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야만 숨죽이며 집에 들어와 문 앞에서 새우잠을 청하곤 하였다. 그런 아버지 대신 두 딸을 키워내시느라 새벽녘에 나가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시던 어머니만이 나의 희망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희망을 아버지는 처참히도 대하셨다. 술을 잡수시면 빈번히 일어나던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 속에서도 우리 때문에 대항 한번 할 수 없었던 어머니! 그런 아버지를 보며 자란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내 또래 아이라면 모두 갖는 꿈과 희망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미움뿐이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처음부터 삐뚤어져 가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처음 마시는 순간부터 주량도 다른 아이들과는 차이가 날 정도로 쌨던 나는 철없던 시절 친구들에겐 멋진 존재였고 나는 그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만 같았다. 한 병, 두 병 늘어가던 술병은 결국 다른 것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스레 부탄가스와 본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술보다 기분이 더 좋아지던, 지긋지긋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도피처가 내게는 가스와 본드였고, 처음 몇 차례는 이 정도쯤은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안하곤 했었다. 엄마에게 또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난 뒤 울며 애원하시는 엄마를 뿌리치고 가출을 했다. 이놈의 집구석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며 자취를 하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않았던 나는 날개가 달린 듯 홀가분해졌고 친구들과 더욱 보란 듯이 거리낌 없이 가스와 본드를 흡입하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난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결국 나는 가스나 본드를 마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불안하고 우울한 내가 되어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가스를 흡입하다 화상을 입어 친구가 병원으로 실려 간 날에도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은 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경찰서에 잡혀 가기도 한 친구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은 커져 갔지만 나는 오히려 혼자서 가스를, 본드를 마시기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고 환각 속에서 살았다. 몇 장의 사진처럼 군데군데 끊어져 떠오르던 기억은 곧 이어 새하얀 백지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맨 정신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던 공허한 그 기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고, 가스나 본드를 흡입한 후 느껴지는 환각은 생각 이상으로 달콤한 것이었기에 후회와 망설임도 점점 사라져갔다. 친구가 집에 들어가고 작은 자취방에 덩그러니 홀로 있던 나를 엄마가 친구에게 물어물어 찾아오셨던 날도 나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엄마가 때려보기도 울어보기도 하셨지만 환각상태에 빠진 나는 내 유일한 희망이었던 엄마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목각인형처럼 누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고 했다. 알코올중독이셨던 아버지에게 비명 한마디조차 지르시지 못하시던 미련한 어머니마저 그때의 나는 원망했었고, 가출한 딸을 집에 다시 데려가려고 매일 친구의 자취방에서 기다리시던 엄마조차 외면한 채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날 무렵부터는 아버지까지 친구의 자취방 앞에서 나를 매일 기다리셨다. 살을 에일듯이 추웠던 한 겨울의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나를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쓰러지고야 말았다. 친구 집 앞에 놓인 메모지를 보고서야 나도 모르게 부랴부랴 달려간 병원에 아버지는 핏기라 사라져 버린 파리한 얼굴로 누워계셨다. ‘미안하다’, ‘내 탓이다.’라는 말 한마디를 어렵게 하시고는 아버지는 등을 돌려 누우셨다. 볼 순 없었지만 그렇게 강하고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나는 그 날 처음 들을 수 있었다. 며칠 후, 아버지가 퇴원하시는 날에 맞춰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나는 집에 들어갔다. 그래도 다시금 가스나 본드를 마시고 싶은 충동이 환각상태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몰래 슈퍼에 뛰어간 적도 있었다. 가스를 끊고 난 뒤 우울했고, 의미도 없었고, 나도 모르게 불안했고 짜증났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면 하루 10시간씩 다시 공부를 하며 환각에 대한 생각을 잊어갔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고생하시는 엄마와 너무도 약하고 노쇠해진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렇게 1년여를 다시 자낸 후에야 나는 중독 증세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었고, 어린 나이에 시작되었던 꽤나 길었던 나의 약물중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10대 중후반 청소년 시절. 어느 때보다 푸르고 반짝여야 할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본드나 가스로 인했던 어두운 기억들 밖에 없다.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았을 뿐, 환각상태에 빠져 살았던 그날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약물로 인해 내가 내가 아니었던 그 수많은 날들에 사실 나는 범죄만큼이나 커다란 죄를 지어야 했다. 친구들에게 타인에게 위험을 주고 피해를 주는 존재가, 너무도 나를 아껴주는 가족들에겐 피눈물이 되어 커다란 상처를 남겨주었으니 그 죄는 평생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죄일 것이다. 또한 내 시스로 나를 놓고 나의 모든 것을 짓밟아가며 환각을 쫒았던 그 시간들은 내 스스로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있다. 이젠 벌써 시간이 꽤 오래 지나버린 이야기이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어리석게도 환각을 선택했던 그 시절이 가끔 떠오르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고단한 삶이지만 팍팍한 세상살이이지만 그래도 잊어야 할 것보다 기억해야 할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내가 갈 곳을 잃어 방황하는 그 순간에도 사랑하는 내 가족과 반짝이는 내 미래는 기억 저편에서 언제나 나를 보며 웃어주고 있었고 난 이제 그 아름다운 기억을 놓치는 바보가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어떤 이의 삶이든 건강한 몸으로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야만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잊어보려는 바보 갚은 짓이 아닌 이겨내 보려는 용기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빛나게 해줄 단 하나의 정답이라고 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