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하는데 적당히는 없었습니다 -구 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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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독자입니다.
결코 자랑스럽지 않지만 제 인생에 꼬리표처럼 붙어버린 말, 저는 약물중독자입니다.
이 수기를 쓰기위해 전 여러 번 망설였습니다. 약물로 인해 상처만 남기며 지내온 아픈 과거를 다시 끄집어낸다는 게 결코 즐거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 한분이라도 약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하는 혹은 이미 시작하신 분에게라도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작은 바람에 제 짧은 글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린 약물
처음 약물을 시작한건 고등학교 1학년 말이었습니다. 여느 청소년들이 그렇게 시작하듯 저 역시 친한 친구의 권유로 처음 본드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본드를 시작하는데 있어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윈 없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어떤 것에 목말라 있던 시기였고, 지루한 학교생활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첫 본드 흡입은 저에게 적지 않은 신선함을 주었고 그것에 만족해하였습니다. 마침 저에게 본드를 권유했던 친구가 집근처에 살았기에 어느덧 우리의 일상은 낮에는 학교, 오후엔 본드 무의미하지만 전혀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런 일상에 빠져있었습니다. 어느 샌가 주위엔 본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저 역시 본드를 하는 횟수 또한 많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도 잠시, 어느 샌가 자연스레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저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은 다시 학업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본드는 자연스레 저에게서 멀어져갔고 다시는 접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할 수도 있는 작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으로 여겼지만 결국 그 작은 추억은 제가 약물중독으로 가는 첫 번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지루함에 불현듯 다시 찾아온 약물.
졸업 후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몇 개의 자격증, 그리 나쁘지 않은 직장, 가끔씩 만나 저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 그리고 여자친구.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저의 20대 초반은 이렇게 아무 탈 없이 물 흐르듯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26살쯤 되는 해였습니다. 어느 샌가 저는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현듯 머릿속에 학창시절 했었던 기억 속에서 지워져 버린 줄 만 알았던 본드가 스쳐지나갔고, 성인이 된 저는 다시 본드를 한다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다지 망설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모텔을 잡고 본드를 흡입하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공백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흥분과 짜릿함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본드는 성인이 된 후에도 잊히지 않고 달콤한 사과처럼 다시 제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샌가 주말에 본드를 흡입하는 일이 잦아졌는데 본드의 독한 냄새는 가족의 눈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많은 꾸지람을 들어야 했지만 이미 본드의 맛을 다시 들이기 시작한 저를 멈추게 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절대 중독은 아니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직장생활 또한 많은 무리가 없었기에 본드를 하는데 있어서 전혀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미처 숨기지 못한 옷에 묻은 본드나 입에서 나는 냄새로 인해 부모님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고 횟수가 많아질수록 부모님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면 성인이 된 내가 본드를 하는데 있어 이해를 바란다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직장에서, 부모님에게, 혹은 경찰에게 들키지 않기 위에 본드를 하는데 있어 더욱 치밀해지기 시작하였고 교활해졌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 지낸 사이라 그런지 부모님의 눈만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주말에 한번 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3~4일씩 휴가를 내서 하기 시작하였고 어느 샌가 본드를 시작하면 며칠씩 하는 것이 저의 패턴이 되어버렸습니다.

약물로 직장생활에 악영향을 주다.
물론 몸에 무리가 있었기에 한번 본드를 하고 나면 길게는 몇 개월은 본드를 손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잦은 휴가, 또는 며칠씩 나오지 않는 잦은 결근으로 인해 제 직장생활은 무리가 오기 시작하였고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잘못에 대해 많이 후회하였고 또 뉘우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개월 후 다시 다른 직장을 구하였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성실한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빠른 시간에 직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일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년이 채 되기 전, 다시 본드를 하고 싶은 욕구가 찾아왔고,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단 한번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본드를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출근을 하였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번하면 며칠씩 해야 했던 제 욕구를 채워주기에 하루는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약물을 하는데 있어 적당히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하게 되면 많은 시간과 많은 양이 필요하게 되고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갈망은 더 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한텐 그랬습니다.” 제 갈망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저는 거짓으로 병가를 내어 며칠 동안 본드를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집에 들통 나게 되었고 저는 또다시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잠시뿐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와 모두 괜찮아 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본드에 대한 갈망은 찾아왔습니다. 한번 갈망이 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많은 고민을 하지만 이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또 결근을 하며 며칠씩 본드를 불어야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다.
가족은 저에게 중독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인하였습니다.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정신병원 생활을 강요하셨지만 전 절대 갈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병 따윈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병원에 가지 않는 대신 집에서 감금당하다시피 지내야 했습니다. 이대로 직장에 나가봐야 또다시 본드를 할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후 얼마간은 본드에 대한 갈망은 오지 않았지만 제 스스로 밖을 차단하고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샌가 우울증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모든 것이 망쳐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하루하루가 짜증이 났습니다. 저는 다시 본드를 했고, 다시는 안하겠다고 말씀드렸던지라 더 이상 병원으로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입원을 했습니다. 외부와 차단된 생활이었지만 전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이미 집에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해왔던지라 외부와 차단된 병원생활이 그리 문제될 건 없었습니다. 2개월이 지날 무렵 전 첫 외박을 나가게 됐고,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냈습니다. 제 얼굴이 다소 밝아져 보였는지 부모님은 만족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주 다시 외박을 나온 저는 또다시 본드에 대한 심한 갈망을 느꼈고 부모님이 주무시는 틈을 타 집에서 나와 다시 본드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크게 실망을 하셨고 저는 다시 병원으로 가야했습니다. 병원생활에 한번 실패한 후 저는 병원에서 생활하는데 있어 단약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과는 두 어 번 같은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인해 더 이상 외박은 없었습니다. 본드를 하고 다시 병원에 온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저는 참을 수 없는 갈망을 느꼈습니다. 3층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욕구는 간절했습니다.
매주 금요일은 부모님 동의하에 관리자와 함께 외부에 있는 헬스장으로 운동을 하러 가는 날이었고 전 탈출을 결심하였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동의를 얻기 위해선 많은 설득이 필요했습니다. 갈망은 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시작했고 또 교활해지도록 하였습니다. 금요일 헬스장에 온 저는 다들 운동하고 있는 틈을 타 쉽게 탈출에 성공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던 돈이 적었던지라 본드 몇 개만 사들고 인적이 드믄 건물로 갔습니다. 너무나 많은 갈망 끝에 하는 본드 여서인지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동시에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중독이구나.”
자신이 중독임을 인식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 나갈 수 없을 때 그때서야 자신이 중독임을 인식하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밤이 되자 저는 제 발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병원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제 모습은 더욱 초췌해져 갔고 어두워져 갔습니다. 병원을 나오고 다시입원하기를 반복하며 1년이 넘을 무렵 전 한 환자와 심한 싸움 끝에 병원의 많은 기물들을 파손하였습니다.
전 강제 퇴원 당했고, 병원을 나가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저를 집에 가두셨습니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밖에서 열고 잠글 수 있는 자물쇠를 설치하셨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전 문을 부스고 나가 본드를 했고 그 후 열쇠 따위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다시 열쇠를 달지는 않았습니다.

부모의 신고로 결국 법적 처벌을 받다.
욕구를 채우기 위해 본드를 하였지만 우울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을 포함해 주위에 알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고 바보가 아닌 이상 본드로 인해 나의 인생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 앞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저는 될 대로 대라는 생각에 대담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집에서 본드를 하였고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경찰을 데려오셨고 저는 유치장에 갇혀야 했습니다. 전 저를 신고한 아버지에게 너무 화가 났고 일주일 후 풀려난 저는 집으로 오자마자 보란 듯이 또다시 본드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동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시 경찰을 데려오셨고 저는 나오자마자 다시 유치장으로 가야했습니다.
유치장에서 풀리자마자 같은 범행을 저지른 터라 제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저는 재판을 받아야 했고, 결국 구치소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병원과는 전적으로 다른 곳이기에 저는 그곳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살아생전 절대 와 볼 일 없을 곳이라 여겼던지라 제가 입은 데미지는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 올수도 있으니 다시는 본드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하곤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습니다.
일주일후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저는 아버지를 만나러 면회실로 들어갔습니다. 면회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의 눈을 보는 순간 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아버지의 눈에서 모든 걸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심해지는 내 중독을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니 이해해줬으면 하는...
처음해보는 감옥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건지 아프거나 불편한곳은 없는지 살피시는...
제가 듣고자 하는 모든 것을 전 그 몇 초 동안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용서의 말이나 대답대신 눈물만 흘렸고 그러다 그 짧은 면회를 마쳤습니다.
그 후론 어머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매일같이 면회를 오셨지만 그다지 할 말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구치소 생활에 잘 적응하기 시작하였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책을 읽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쓰며 보냈습니다. 그 당시엔 본드를 하고 싶은 욕구도 없었지만 본드를 끊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 했다는 것이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저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고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습니다. 6개월이 지나서 구치소를 나오게 됐습니다. 집에선 따뜻하게 반겨주었고 지난날 있었던 안 좋았던 일들은 없었던 일인듯 했습니다.

재발로 인해 심한 죄의식에 사로잡히다.
글로 표현하기조차도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1년이 지날 무렵 저는 다시 본드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본드를 하는데 있어 심한 죄의식이 제 생각을 파고들었습니다. 아니 죄의식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다만 인식하지 못했었던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심한 죄의식에 빠져 본드를 하던 저는 결국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습니다. 칼에 찔리는 고통, 미치도록 두려운 어떤 존재 등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 앞에 저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겨우 남아있는 정신을 가지고 부모님에게 갔습니다. 상황설명도 필요 없이 한눈에 보아도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기에 부모님은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며칠 후 새로 만나게 된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전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 망가진 뇌는 좀처럼 복구가 힘들기 때문에 손상되면 손상될수록 많은 후유증을 불러일으키고 심할 경우 기억상실, 치매 현상까지 올 수 있다는 예기였습니다. 물론 본드가 몸에 좋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지만 이 정도까지 심각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라고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왜 조금 더 빨리 알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과 그 사실을 알았어도 본드를 시작했을까하는 생각이 겹쳐 지나갔습니다. 그 후 얼마간은 본드를 하지 않아도 환청, 환시 등 많은 후유증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본드를 하지 않고 있는 맨 정신인 상태에서 겪는 이런 현상들을 감당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약물사용에 회의하기 시작하다.
저는 본드에 대해 본드를 하며 지내온 제 과거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후유증이 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단순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게 너무나 싫었고, 본드를 하면서 잃게 된 내 모든 것들을 보며 허무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꿈을 잃고 살기 시작한 제자신이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병원에 있던 한 달 정도의 시간동안 전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바꿔나가기로 생각했습니다. 전 제자신이 중독자임을 철저하게 인식하였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갈망에 항상 긴장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중독되는 주요 원인은 자신은 중독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이쯤에서 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중독자가 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신은 중독이 아니라 괜찮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전에 언급한바 있는 것처럼 자신이 중독이라고 느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온 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저는 서울에 있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내 송천재활쉼터에 와있습니다 이곳에서 저와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과 함께 단약을 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가고 있습니다. 저에겐 이곳이 제가 있었던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서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지내왔기에 누구보다도 약물로 인한 고통을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아픈 부분을 서로 감싸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을 발판삼아 제가 잃었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약물을 하며 잃게 된 부모님께 대한 저의 신뢰를 되찾아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반드시 찾아야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약물중독자입니다. 하지만 약물이 너무나 싫습니다. 또다시 약물을 하게 될지 안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죽는 날까지 약물과 싸워야 하는 중독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