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렁 속에 희망을 - 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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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솔이 처처(􃻿􃻿)에 둘러싸여 있어 청송이라 불리는 이 곳, 회색 담장이 울타리처럼 높게 처져있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맑고 꾸밈이 없는 높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지금은 가슴에 따스한 기운을 느끼며 개화하는 여린 꽃봉오리처럼 또다른 내일을 꿈꾸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지만 불과 십 개월 전만 하더라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굳은 신뢰를 보내주던 그들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또한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젊은 초석들의 밑둥을 썩게 하고 세상의 순리와 이치를 역행하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자행했던 어리석은 시간들을 보냈으니 티없이 푸르게 펼쳐있는 저 하늘이 지금도 내 얼굴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 같다. 마약. 그 어떤 이유에서건 가까이 하여서는 안 되고 용서를 구할 수도 없다는 죄를 하늘의 뜻을 헤아려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서 범하고 있다면 어느 누가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의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하는 변명을 어떻게 쏟아낼 수 있겠는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한번 빠져들면 죽음과도 같은 인내력과 의지력이 없인 헤어나기 힘들다는 그 암흑의 수렁 속을, 지금 이 시간도 그 연로하신 몸으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어머님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먼 훗날을 내다보며 걷고 있는 자식의 앞날과 육체와 정신적으로 피폐되어 있는 내 자신을 위하여 이젠 이빨을 깨물고서라도 헤어 나오고 싶다. 육이오 전쟁이 끝나고 곳곳에서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그 후유증이 까맣게 나타나고 있을 때 서울에서 네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모르고 친지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소년시절과 청년기에 최고학부를 다니며 아무런 탈 없이 무난히 보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작한 작은 사업을 내 할일을 착실히 해나갔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어깨를 견주어 보다 월등히 일어서기를 욕심부렸던 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싶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조금 멀리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걸림도 없었다. 큰 어려움 없이 성공으로 이어졌던 오만함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이런 결과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친지가 권하는 마약을 받아들였다. 어떤 것에도 지지 않으려 했던 그 나쁜 근성이 지금의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향락을 꿈꾸며 즐기고, 자신과 가정의 건강이 피폐해져 있을 때에는 후회도 이미 늦어버렸다. 1995년, 탄탄대로를 달리는 회사를 경영하던 때에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으로 수원지검에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 여파로 회사는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더 큰 절망 속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헤어나 2001년 사우나를 경영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치던 중 나의 나태함과 교만함으로 다시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2003년 6월, 또다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게 되었다. 당연한 죄에 대한 대가였다. 10개월 동안 자신을 다지고 또 다졌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과 가족들을 향한 사랑,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던 그 큰 웅지, 모든 것을 파탄으로 몰고 가 탕자가 되어버린 내 자신은 다시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다졌다. 2004년부터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실시하는 교육과 심포지엄 등에 열심히 참석하며 단약자들을 위한 한국NA모임을 창립하고 그 일원으로 작지만 소임을 맡으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2004년 11월 또다시 그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암흑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고 지금 이렇게 높은 울타리가 처진 곳에서 처절하게 통곡하고 있다. “이겨내지 못할 고통은 주시지 않으신다 했는데 제 자신의 인내력이 저 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의 신의를 저버릴 만큼 나약한 것이란 말인가?” 흉각을 들추어 염통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으로 묻고 또 묻고는 하였다. 나약한 내 자신의 가슴을 치고 원망하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물로 적시며 보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씩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있다. 긴 세월을 오로지 기도 속에서 보내신 어머니의 그 간절함 속에서“너는 내 것이라”지금 이 시간에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배어 있음을 말이다.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아갈 하나 뿐인 아들이 겪어야했던 그 동안의 가슴앓이가 고스란히 이 못난 사람에게 전이되고, 그토록 헤아릴 수 없는 아픔 속에서도 애꿎음 한번 없이 묵묵히 인내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이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나는 2000여년 전 갈릴리 교인들의 무분별한 신앙을 향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이신득의(􃤍􃊝􂞊􃢞)”의 교리를 설파했던 감옥 속의 사도 바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그 길만이 자식을 바라보는 연로하신 어머님께 드리는 유일한 희망이요,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하는 내 사랑과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늘 깨어 있겠다. <2006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발간 수기집 '후회와 눈물 그래도 희망이' 에서 발췌>